저희 시할아버님은 몇년 째 병원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.
치매에 걸리신 시할아버님을 시부모님이 모시고 사셨는데
농사일로 바쁘신 두분이 돌보시긴엔 역부족이었습니다.

몰래 집을 나가셔서 길을 잃으시기도 수차례...
증상이 점점 심해지니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을 시키셨답니다.

제가 결혼할 당시에도 할아버님은 병원에 계셨습니다.
장남인 남편을 유난히도 이뻐하셨던 할아버님은 지금도 늘 남편만 찾으신답니다.

그런데 어린 시절의 남편 모습을 기억하시는 탓일까요?
막상 찾아뵈어도 못알아 보실 때가 더 많습니다.

그러니 남편도 어색해서 할아버님께 말 붙이기를 어려워 하더군요.
저라도 좀 살갑게 해드리면 좋을텐데... 옆에서 멀뚱히 서있기만 합니다. ㅡ.ㅜ

할아버님 생신날...
고모 할머님 두 분을 모시고 병문안을 갔습니다.

그런데 그날은 병실 밖에 나와 계셨습니다.
" 어머~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올 줄 알고 계셨나봐요. "
평소엔 병실에서 잘 안나오시는 분인데 그날은 계속 병실 밖을 서성이셨답니다.

고모 할머님은 오랜만에 만난 오빠를 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셨습니다.
" 아유~ 손발이 왜이렇게 차. " 하시며 연신 만져 주시고
집에서 챙겨오신 복숭아랑 옥수수를 드시는 할아버님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셨습니다.

저희는 옆에서 또 멀뚱멀뚱...

병실에는 치매에 걸리신 분들 뿐 아니라 몸이 불편하신 어른신들과
어린 아이도 한명 있었습니다.
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누워 있는 아이를 보니
안타까운 마음에 뭉클해졌습니다.

그리고 제 품에서 곤히 잠 든 도담일 보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.

모두 스스로를 돌보시기 힘든 분들이라 간호사 분들도 많았습니다.
그리고 쉴 새없이 왔다갔다... 무척 분주하게 움직이시더군요.
그리고 저희들 앞을 지나실 때마다 할아버님께 말을 건네셨습니다.
가족들이 와 있어서 좀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였습니다.

그때 다른 병실에서 아주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.
" 나 안보고 싶었어? 난 보고 싶었는데... "
언뜻 소리를 듣고는 누군가 가족이 병문안을 왔나보다 했습니다.

슬쩍 그쪽을 바라보니 넉살 좋게 보이는 아주머니가
할머니에게 안기며 애교(?)를 부리고 있었습니다.
그런데 복장을 보니... 간호사 였습니다.

그 분이 복도를 지나다 할아버님을 보고는 손을 덥썩 잡으시며 인사를 건네셨습니다.
아마도 한동안 일이있어서 못나오다가 오랜만에 오신듯 했습니다.

" 아이~~ 손에 뭘 이렇게 묻혔어? 여기 ○○할아버지 응가 만졌는데? "
하시더니 위생장갑을 끼시고 물티슈를 가져와 손톱 밑까지 깨끗하게 닦아주셨습니다.

그 모습을 보는 데 순간 저는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.
사실 저도 할아버님 손에 뭔가 묻은 걸 보긴 했습니다.
근데 선뜻 닦아드리겠다는 말이 안나오더라구요. ㅠ.ㅠ

저흰 가족임에도 그저 병문안차 잠시 다녀갈 뿐
그 잠시동안도 할아버님께 살갑게 못해드렸는데
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맘이 없다면
그렇게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참 감사했습니다.

고모 할머님 두분도 간호사들이 좋아 보여서 한시름 놓으시는 듯 했습니다.

남편과 저는 이렇게 할아버님 병문안을 다녀올 때면 마음이 많이 착잡합니다.
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잘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
부모님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됩니다.



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당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친정 부모님...
이렇게 사진으로만 보면 세상에 금술 좋은 부부 하나도 안부러울 것 같은데
그동안 참 많이도 다투셨답니다.

매일 얼굴 맞대고 살 때는 잘 몰랐는데
결혼을 하고 나니 가끔씩 뵐 때마다 두분 얼굴에서 세월이 지나는 흔적이 보입니다.

우리에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부모님...
아프지 말고 건강하게... 사진 속 모습처럼 늘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.

Posted by 연한수박